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한 총각이 살았어요. 하루는 총각이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총각은 가난해서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었어요. 쌀독에 들어있는 좁쌀 한 톨만 들고 집을 떠났지요.
한참을 걷다 보니 벌써 날이 저물었어요.
‘옳지, 오늘은 저 주막에서 묵어야겠다.’
총각은 주인한테 좁쌀 한 톨을 내밀며 말했어요.
“주인 양반, 이 좁쌀을 좀 맡아 주시겠소? 내일 아침에 꼭 돌려주셔야 합니다.”
총각은 좁쌀 한 알을 주인에게 건네 주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원 참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웬 좁쌀이람?’
주인은 좁쌀을 부뚜막에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어요. 그런데, 그 좁쌀을 쥐가 홀랑 먹어버렸어요. 다음날 아침, 총각이 주막집 주인에게 말했어요.
“주인어른. 잘 묵고 갑니다. 어제 맡긴 좁쌀 한 알을 주시겠소?”
주인은 좁쌀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 그 좁쌀은 밤에 쥐가 먹은 모양이오. 내가 다른 좁쌀을 주리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꼭 그 좁쌀이어야 한단 말이오.”
주인은 부엌에서 쥐 한 마리를 잡아 총각에게 주었어요.
총각은 좁쌀 대신 받은 쥐를 짐 속에 잘 넣은 뒤에야 길을 나섰지요.
다음날도, 총각은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한참을 걸었어요. 해가 뉘엿뉘엿 지자 하룻밤 묵어갈 곳을 찾았어요. 저 언덕 밑에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어요. 총각은 집 주인에게 말했어요.
“저는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중입니다. 하룻밤만 재워주시겠습니까?”
“그러시구랴.”
마음씨 착해보이는 집주인은 총각을 흔쾌히 맞아주었어요.
“주인어른, 부탁이 한 있습니다. 이 쥐를 하룻밤만 맡아주시겠습니까?”
“쥐, 쥐를요?”
“네,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쥐라서 그렇습니다.”
집 주인은 쥐를 자루 속에 넣어두었는데, 밤새 고양이가 와서 쥐를 잡아먹었어요.
다음날 아침, 총각이 일어나 어젯밤에 맡긴 쥐를 찾았어요.
“어르신, 잘 묵고 갑니다. 어제 맡긴 쥐를 돌려주시지요.”
“젊은 양반, 우리집 고양이가 어젯밤 쥐를 잡아먹은 모양이오. 내 다른 쥐를 잡아주겠소.”
“아니 아니 아니되오. 꼭 그 쥐여야한단 말이오.”
“고양이가 벌써 잡아먹은 쥐를 어떻게 준단 말이오?”
“그럼 그 고양이라도 주십시오.”
집주인은 총각에게 고양이를 내주었어요. 총각은 고양이를 데리고 길을 떠났지요.
다음날도 하루 종일 걷다가 다시 날이 저물었어요. 불빛이 환하게 켜진 기와집이 보였어요. 총각은 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말했어요.
“주인 어른, 오늘 하룻밤만 좀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고양이를 좀 맡아주시겠습니까?”
집 주인은 총각을 사랑방으로 안내해주고 고양이를 외양간 기둥에 잘 묶어 놓았어요. 그런데, 한밤중에 고양이는 당나귀 발에 차여 죽었지 뭐에요?
다음날 아침, 총각은 주인에게 고양이를 돌려달라고 했어요.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총각에게 말했어요.
“아, 고양이는 우리집 당나귀에게 발로 차여 어젯밤 죽고 말았다네.”
“고양이가 죽었다고요? 아이고 이를 어쩌나.”
“내가 다른 고양이를 한 마리 주겠소.”
“아니 아니 아니되오. 꼭 그 고양이여야 한단 말이오.”
“이미 죽은 고양이를 어떻게 살려낸 단 말이오?”
“그럼 고양이를 죽인 당나귀라도 주시오.”
주인은 할 수 없이 총각에게 당나귀를 한 마리 내 주었어요.
총각은 당나귀를 끌고 터벅터벅 길을 떠났어요. 날이 어두워지자 총각은 주막에 들어갔어요.
“주인 양반, 빈 방 있소? 하룻밤 묵어가려는데, 이 당나귀를 잘 좀 맡아 주시오.”
“그럽시다.”
주인은 외양간에 당나귀를 묶어 놓았지요. 그런데 이를 어째요? 당나귀가 황소 뿔에 받혀 죽고 말았어요.
다음 날 아침, 총각이 주인한테 당나귀를 달라고 했어요. 주인은 깜짝 놀라 총각에게 말했어요.
“젊은 양반, 당나귀가 황소 뿔에 받혀서 죽은 것 같소. 내가 다른 당나귀를 구해다 주리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꼭 그 당나귀여야 한단 말이오. 그럼 내 당나귀를 죽인 황소를 주시오.”
총각이 막무가내로 떼를 쓰자, 주인은 하는 수 없이 총각에게 황소를 주었어요.
총각은 황소 등에 훌쩍 올라타고 서울로 떠났지요.
서울에 도착한 총각은 한 주막에 묵게 되었어요.
“과거시험을 보는 날까지 여기에 묵겠으니, 내 황소를 잘 좀 돌봐주시오.”
“아,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요.”
주막 주인은 큰 소리를 쳤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총각, 정말 미안한데, 내 막내아들이 그 황소를 내다 팔아버렸다는군요.
내가 다른 황소를 구해드리리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꼭 그 황소여야 한단 말이오. 내 소를 당장 찾아주세요.”
총각의 소는 마을에서 제일 부잣집인 정승 대감님댁으로 팔려갔어요.
주막 주인은 정승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황소를 돌려달라고 했지요.
그러나 정승대감이 총각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자네가 그 황소의 주인인가? 그런데 어제 잔칫상에 쓰려고 소를 잡아먹었네.”
“아니 내 황소를 잡아먹었다고요? 그럼 제 소를 먹은 사람을 대신 주십시오.”
정승대감은 껄걸 웃으며 말했어요.
“허허허, 젊은 양반. 우리 집에는 빈 방이 많으니 과거시험을 보는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게나.“
총각은 으리으리한 정승댁에 머물며 열심히 과거시험 준비를 했어요.
총각은 좋은 성적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했지요.
정승대감이 총각을 불러 말했어요.
“자네의 소를 먹은 사람은 바로 내 딸이라네. 내 딸을 데려가게나. 허허허!”
총각은 정승대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
좁쌀 한 톨로 장가 든 총각의 이야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