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각문 (시인: 김남조)

장유진

♣ 태양의 각문(刻文)

- 김남조 시

가을을 감고 우리 산 속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기폭처럼 퍼덕이고 눈 들 때마다
태양은 익은 석류처럼 파열했습니다.

당신은 낙엽을 깔고 그리고 향수를 처음 안 소년처럼 구름을 모아 동자(瞳子)에 띄웠고, 나는 한 아름 벅찬 바다를 품은 듯 당신과 가을을 느끼기에 한때 죄를 잊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벗었음을 알던 옛날 에덴의 그 억센 경이(驚異) 같은 것이 분수처럼 가슴에 뿜어오르고

만산(萬山) 피 같은 홍엽(紅葉)-

만산 불 같은 홍엽-

아니 아니 만산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홍엽에서 모든 사랑의 전설들이 검붉은 포도주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무슨 청량한 과즙처럼 바람이 풍겨 오고 바람이 스처 갈 뿐, 사변(四邊) 폐망(廢茫)한 하루의 천지가 다만 가을과 당신만으로 가득 찼고, 나는 차라리 한갓 열병 앓는 소녀였음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말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을 숨막히도록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 아아 응혈(凝血)처럼 뜨거운 것이 흘러 내리고-

나는 비수(匕首)처럼 하나의 이름을 던져 저기 피흐르게 태양을 찔럿으니, 그것은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내가 사랑한 다만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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