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사태를 알고 남대감이 다급히 불렀으나
이미 때는 늦었어.
그때, 조금 전까지 불기둥이 머물렀던
그곳에서 주지스님이 뛰어나왔어.
“스님!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넋이 나간 남씨 부인 옆에서 남대감이 물었어.
“일을 그르치고 말았잖소!
내 얼른 절로 돌아가서 수습해야 하니
당장 그 호리병을 모두 이리 내시오!”
남대감이 주섬주섬 호리병을 챙겨
스님에게 건네던 그 순간이었어.
혜령이 아주 날쌔게 달려와
눈 깜박할 사이에 주지스님의 목을 물고 늘어졌어.
“혜령아! 이게 무슨 짓이냐!”
혼비백산하며 남대감이 말리려는 찰나에,
갑자기 주지스님의 모습이 시커먼 늑대로 변하는게 아니겠어?
“에구머니나!”
남씨 부인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
남대감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지.
혜령은 다시 빨간 호리병을 집어 들고 늑대를 향해 던졌어.
“요망한 늑대야! 물러가라!!”
불기둥이 다시 솟구쳤고,
늑대는 불길에 휩싸여 타죽고 말았어.
그리고 쓰러져있던 혜인이의 입에서
빨간 연기가 나와 호리병으로 들어갔지.
혜령이 달려가서 남씨 부인의 손에 쥐어진
뚜껑을 찾아 야무지게 닫았어.
“아버지, 이제 걱정마세요.
모든 일이 다 잘 지나갔습니다.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
오라버니들까지 모두 괜찮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남씨 부인이
이 모든 것을 황망하게 바라보았지.
혜령이 방긋 웃으며 남씨 부부에게 다가왔어.
그러더니 다소곳이 절을 했어. 곱게 절을 하고 앉은 혜령이 말했어.
“어머니 오래전 제가 드렸던 구슬을 기억하시지요?”
“이... 이것 말이냐?”
남씨 부인이 안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더 꺼냈어.
그 주머니에서 또르르 굴러나온 구슬을
혜령이가 집어 들었어.
“이 구슬을 드리기 전, 그보다 더 오래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구해주셨던
여우가 저의 어머니랍니다.
그때 저는 배 속에 있었지요.
두 분께서 구해주신 덕분에
비록 짐승의 몸이나마 태어나서
숲속에서 많이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간 저는 저의 어머니 여우를 모시듯
두 분을 사랑했습니다. 이제 저는 돌아가지만,
마음 한 켠은 두고 가려 합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혜령이 구슬을 꿀꺽 삼켜버렸어.
그리고 곧 의식을 잃고 쓰러졌지.
혜령의 입에서 오색 빛의 연기가 스르르 나와서
하늘로 날아가는가 싶더니
조그마한 씨앗 하나가 톡 떨어지지 뭐야?
“이건 꽃씨일까요?”
남씨 부인이 그 씨앗을 집어 드는 찰나에,
주지스님이 헉헉대면서 들어왔어.
“소승이 늦었습니까? 못돼먹은 늑대에게 잡혀있었습니다.”
“아닙니다. 다행히 모두 무사합니다.”
남대감이 대답했어.
그리고 어느 사이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어.
동이 트고 기절해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깨어났지.
“어머니, 왜 우리가 밖에 나와 있어요? 춥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왜 모두 옷이 더럽습니까?”
아이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해하며 질문을 해댔지.
남씨 부부는 그저 웃으며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 주었어.
이듬해 봄이 되고, 남씨 일가는
여우가 떨어뜨린 씨앗을 마당 화단에 심었어.
그리고 씨앗은 곧 화려한 붉은 꽃을 피워냈지.
여우처럼 풍성한 꽃잎이 넓게 피어난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여우가 아직도 은혜를 갚으며
지켜주는 거라고 했어.
그리고 남씨 일가는 마을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