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가운데서 불어 나오는
바람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 바람에 온 몸을 웅크려야 했던
기억이 있나요
용기를 내라는 따스한 그녀의 한 마디가
한번 실패쯤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그녀의 위로가 내겐 늘 겨울바람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려 들던 시절,
아침이면 습관처럼 검정 물들인
야전 잠바를 어깨에 걸치던 시절,
이유도 없이 문득 문득 외로움에 가슴 떨던 시절
그녀가 없는 내 옆자리는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하얀 분필가루가 어깨위에 내려앉던 답답한 강의실,
쉬는 시간이면 환기통 없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태우곤 했습니다
다들 축복이라 말하는 젊음이
양어깨를 누르는 짐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녀 앞에선 더더욱 그랬습니다
남자다운 당당함에 끌렸다는
그녀 앞에서 늘 고개를 수그린 내모습
어떠했을까요 한결같은 웃음으로
따스함을 아끼지 않던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으니까요
사흘이 멀다 걸려오던 전화가
뜸해지면서 그래 넌 여대생이니까
지독히도 옹졸했죠
그동안의 정성은 그저 동정이었을 거라고
못가진자를 향한 가진자의 여유였을 거라고
여러 밤 잠못들고 뒤척여야 했습니다
내가 먼저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하던 가을날
낙엽은 유난히도 서럽게 떨어져 내렸습니다
메마른 나뭇가지가 외로워 보여서라며
난 밤새 술잔을 안고 울었습니다
그녀가 보고파서가 아니라 시린 가을 하늘에
눈이 부셔서라며 그리고 시간은
쉽사리도 흘러갔습니다
텅 비어버린 가슴으로 시험을 치르던 날
흰 눈이 이렇게 차가울 수도 있구나
내 아픈 느낌 앞을 막아선 한아름 꽃다발
그 앞에 마주 웃고 있는 그녀의 하얀 미소
그녀는 그렇게 열린 가슴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