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어! 차마 못보겠구나. 내가 선영의 덕으로 어사한 줄 알았더니, 예와 보니 춘향모 정성이 반이나 되겠구나. 저런 형상에 내가 이 모양을 하고 들어갔다가는 저 늙은이 성질에 큰 괴변이 날터이니 잠시 속일 수 밖에 없지.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춘향모 울다 깜짝 놀래어,
“향단아! 너그 애기씨가 죽게가 되니 성주 지신이 발동을 허였는지, 어느 놈이 술 담뿍 먹고와서 오뉴월 장마통에 토담 무너지는 소리 허는구나. 나가서 좀 보고 오너라.”
향단이도 놀래어 조심조심 나와보니 웬 사람이 서 있거늘,
“누구를 찾소?”
“오! 너그 마나님 좀 잠시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향단이가 들어가,
“마나님, 밖에 웬 걸인 같은 사람이 와서 마나님을 잠시 나오시라고 여쭈래요.”
“아니, 이 정황 중에 있는 늙은이를 누가 오너라 가너라 헌다냐?”
춘향 모친이 걸인이란 말을 듣더니 쫓으러 나오는디,
[중중모리]
“허허 저 걸인아. 눈치없고 재치없고 야마리 빠진 저 걸인. 이 고을서 동냥을 허며 나의 소문을 못 들어. 칠십당년 늙은 년이 무남 독녀 외 딸 하나 옥중에다 넣어두고 명재경각이 되었는디, 동냥은 무슨 동냥. 동냥없네, 어서가소.”
어사또 이른 말,
“내가 왔네. 허어, 자네가 나를 몰라? 경세우경년허니 자네 본 지가 오래여. 세거인두백허니 백발이 완연히 되었으니 자네 일이 말이 아니로세. 나를 몰라? 허어, 자네가 나를 몰라?”
“나라니 누구여? 말을 히야 내가 알지. 덮어놓고 모르냐고 허니 내가 자네를 어찌 알어. 해는 저물어지고 성부지 명부지 헌디 내가 자네를 어찌 알어. 말을 허소 말을 히여.”
“나를 몰라? 허어, 자네가 나를 몰라? ‘이’가래도 모르겠나?”
“‘이’가라니 어떤 ‘이’가? 성안 성외 많은 ‘이’가 어느 ‘이’간 줄을 내가 알어? 어디보세, 어디보아. 옳지 옳지 옳지 내 알었네. 자네가 자네가 문자도 일수쓰고 우순 말도 일수 잘 허는 서문안 이 형방님 아들 이이이 이이이 이이이 이 자만은 옳네마는 형방 자가 아니로구만.”
“나를 몰라? 허어, 자네가 나를 몰라?”
“이 사람아, 말을 허소. 칠십당년 늙은 년이 무남 독녀 외딸 하나 옥중에다 넣어두고 옥수발을 허노라고 밥 못 먹고 잠 못 자니, 정신이 없고 눈이 어두워 엊그저께 보던 사람 정녕히 나는 몰라.”
“나를 몰라? 허어, 자네가 정녕 날 몰라? 우리 장모가 망녕일세.”
춘향 어모 이 말 듣더니,
“뭣이 어쩌고 어찌어, 장모? 장모라니, 남원 읍내 오입쟁이 놈들 아니꼽고 더럽더라.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외인 상대를 아니 허고 양반 서방 허였다고 공연히 미워허여 내 문전으로 지내면서 쉰사 한마디는 아니 허고 빙글 빙글 비웃으며 여보게, 장모? 장모라면 환장헐 줄로, 이가라면 이 갈리네. 듣기싫네, 어서 가소.”
“허허, 장모가 망녕이여. 장모가 정녕 모른다고 허니 거주 성명을 일러줌세. 서울 삼청동 사는 춘향 서방, 이몽룡. 그래도 자네가 몰라?”
춘향 어머니 이 말 듣더니 어안이 벙벙허고 두 눈이 침침허여 한참 말을 못 허고 넋 잃은 사람 모냥으로 물그러미 보더니 우루루루 쫓아나와 어사의 목 부여안고,
“아이고 이게 누구여? 몽룡이라니. 참말인가, 농담인가, 재담인가, 진담이여? 어디보세.”
“왔구나, 우리 사위 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는가? 얼씨구 우리 사위. 하날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 허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락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어디 갔다 이제 온가? 예기 천하 몹쓸 사람, 올라간 지 수 년 되도록 편지 일장이 없으니 어이 그리 무정헌가? 이리 오소, 들어가세.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 밖에 주저헌가? 이리 오소, 들어가세. 향단아, 등롱에 불 밝혀라. 서울 서방님이 외겼다.”
방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니 걸인 중에 대방 걸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