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다시 돌아다닐 적의 풀밭에서도 잠을 자고 빈 물방아간에서도 좌기를 하며 지낼 적에 흥보가 일이년이 지나가니 빌어먹는데도 그 이력이 났던가 보더라 마누라 시켜 밥 얻어 오면 고추장 아니 얻어왔다고 때려도 보고 흥보가 이렇게 풍마 우습을 겪으며 살아갈 적 그렁저렁 성현동 복덕촌을 당도하야 일간 초가집이 비었거늘 거기다 몸을 잠시 의탁하여 지낼 적에 흥보 내외 금실은 좋던가 얼른허면 잉태허여 깜부기 하나없이 구 형제를 조롯이 낳았것다 권솔은 많고 먹을 것은 없어 놓으니
창조
철모르는 자식들은 음식노래로 부모를 조르난디 턱 달라난디 놈 밥 달라나난 놈 엿을 사 달라글난 놈 각심으로 조를 적의 흥보 큰아들이 나 앉으며 아이구 어머니 이 자식아 너는 어찌 요새 코 안 뚫은 고등부살이 목성 음이 나오느냐 아버지 어머니 공론허고 날 장가 좀 드려주오 내가 장가가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만히 누워 생각허니 아버니 어머니 손자가 늦어갑니다요 흥보 마누래 기가 맥혀
진양
어따 이놈아 야 이놈아 말 들어라 내가 형세가 있고 보면 니 장가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못 먹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것느냐 못 먹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밤낮 집에애 들어앉아 울고만 있으니 뭔 재수가 있겠오 나 읍내 좀 갔다 올라네 읍내는 뭣 하러 가실라요 환자 맡은 호방한테 환자섬이나 얻어와야 굻어 가는 자식을 구하지 않겠오 내라도 안 줄 테니 가지 마시오 누가 믿고 가나 사구일생이제 “거 내 갓 좀 주오" “갓은 어디다 두었오” “아뒤 안굴뚝속에 두었제' "아니 갓은 어찌하여 굴뚝 속에 두었단 말씀이요" “그런 것이 아니라 신묘년 조대비 국상시에 거 친구하나가 백립 하나를 주며 아직 바닥이 존존허다고 날 더러 고쳐 쓰라고 하데 그려 아 이 사람아 지금 내 이 정상에 갓방에 맡겨 고쳐 쓸 수 있나 끄스름에 끄슬려 쓸라고 굴뚝 속에 두었제” 그러고 “내 도복 좀 내 줄란가” “도복은 어따 두었오” “아 장안에 두었제” “여보 영감 우리 집에 무슨 장이 있드란 말이요" "허허 이 사람아 달구장은 장이 아니란 말인가”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질청을 들어가는듸
자진모리
흥보가 둘어간다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 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 매여 조새 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 밥풀관자 종이 당줄 두통 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푼 배 불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죽어도 양반이라고 여덟팔자 걸음으로 의식비식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