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8.

음악도시


그 남자...♂

이 여자가 요즘 유난히 자주 쓸쓸해한다는 걸 남자는 압니다...
그리고 그 쓸쓸함을 방해해선 안된다는 것도 남자는 압니다...
가끔 여자가 길게 한숨을 쉬면 남자의 가슴도 덩달아 횡해지지만... 그래도 남자는 며칠 전 여자의 부탁대로 귀찮게 뭘 물어보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그것이 혈액형인지, 별자리인지... 혹은 사상체질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면 유난히 쓸쓸함을 즐기려는 인간형이 있으려니...
오늘 5분 거리를 한시간만에 걸어왔다는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합니다...
오늘은 그냥 차 타고 어디로든 가고 싶다고...
여자에게 옮아 덩달아 말수가 없어진 남자는 그러자 대답도 없이 자동차에 시동을 켭니다...
한참을 달려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강기슭에 차를 세운 남자...
어느새 잠이 든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 가만히 손등을 대어 봅니다...
'잠결에라도 쓸쓸해하지 마라...'
여자가 얼굴을 조금 찡그립니다...

그 여자...♀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던 여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립니다...
'내가 만지지 말랬지! 말도 걸지 말랬지!'
그러나 여자는 울컥 치솟은 말들을 용케 삼켜냅니다...
그리곤 마치 주문처럼...
'나는 벌 받을 거야... 착한 이 사람을 버리면... 나는... 벌 받을 거야...'
허나 그 순간 남자의 손바닥이 다시 여자의 얼굴에 닿아 여자는 또 한번 얼굴을 찡그리게 됩니다...
'축축해! 눅눅해!
그래... 내가 벌 받을 짓 한게 어디 한 두개인가? 난 어릴 적 엄마 지갑에도 손을 댔는 걸? 난 오늘도 무단횡단을 했는 걸?'
그때쯤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킵니다...
남자의 그늘이 걷히자 여자의 얼굴 위로 그대로 들이부어지는 화살같은 햇살...
'그래... 이 사람 버리면 나는 온몸에 꿀을 바른 채 사막에 서있는 것처럼 쓰리고 따가울 거야...'
남자가 몸을 움직입니다...
담배를 찾는 소리, 안전벨트 푸는 소리, 그녀가 깰새라 조심스레 차문을 여는 소리...
남자가 내리자 여자는 그제야 눈을 뜨고는...
'정말 싫은 건 닿는 것도 싫을 만큼 축축한 니 손이 아니야...
더 끔찍한 건 늘 새롭고 보송거리며 달콤한 것만 원하는 내 변덕과 이기심이야...'
남자가 다시 차에 오르고 여자는 다시 눈을 꼭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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