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호는 평안도 출신으로 보이나 분명한 것은 알 길이 없다. 김주호는 일제 때 서도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배뱅이굿 등 서도서리도 취입하였지만 주로 ‘영감타령’과 같은 재담소리와 민요를 많이 취입하였다.
김주호의 배뱅이굿 음반은 보기 힘든 편이며, 이 빅터 음반에 취입된 것이 아마 그의 유일한 배뱅이굿 녹음이 아닌가 싶다. 다행이 빅터 원반에 그의 녹음이 남아 있어 이번에 복각된 것이다. 이 배뱅이굿은 2장 4면에 담기어 있는데, 대체로 김종조의 배뱅이굿과 극적 짜임이나 사설이 유사하다. 따라서 김주호와 김종조의 배뱅이굿은 같은 바디로 보이는데, 김주호의 기량은 김종조에 견주어 처진다 할 것이다.
<제2~3면> 제2면과 3면에는 평안 건달의 굿 사설로 공수가 주가 된다.
장고 : 한문필
원반 : Victor KJ-1071(KRE 106)
녹음 : 1936. 2. 29
(아니리)
깊이 파고 묻은 후에 집으로 돌아와,
“여보 영감, 삼년 석달 굿을 하면 배뱅이가 와서 말 한다니 한번 하여 보았으면.”
이때에 굿 한다는 광고를 처처에 붙여노니, 각처 무당이 만수산에 구름 모이듯 하는데, 이때에 평양 어떤 재산가의 아들로 화류계에 침혹하야 논 마지기 밭 마지기 뒤지 찬장까지 다 팔아대고, <혹 불면 날아갈 붕어 사탕이 되어,> 끈 떨어진 뒤웅박 모양으로 이리 궁글 저리 궁글 한다가, 배뱅이 굿 하는 데를 갔던 모양이라. 어떤 주막 노친에게 내용을 잘 알아 가지고 굿청을 찾아가서 비위를 한번 붙여보는데, 입에 더품을 한입물고 뛰어들어가며,
“에헤라, <내가 어드른 소든 말코 말았더니, 앞 다리 석간에 뒷 다리 후각에 줄풍류 여러 개 놀더니 소드니 아닐까부냐.> 에헤라 지나가는 박사 굿 한 거리 안 시기면 직사 박사 <옛명사 호늘가 감태기 쓰고 해태디사 하리라.>”
이때 무당이 하도 험상하게 구니까,
“박사 만신님 바른대로 가르쳐 주세요.”
비는 것을 보니까 ‘좌우간 인격은 된 모양이다.’ 하고,
“오냐 하고싶은 말 다 할 테이니 고깔 장삼을 가져 오너라.”
이때 박사가 생각하기를 단판에 배뱅이가 온듯이 하야불 작정으로,
(창 : 무장단 공수조)
“왔구나 왔구나, 배뱅이 네가 왔구나. 우리 오마니는 어데 갔소, 어어.”
(아니리)
이때에 친구 노친 함경도 부인이 왔구나 왔구나 하는 바람에 대신 빌겠다.
“왔데이 왔데이 하니 무스게이 왔데이. 왔데이 말을 다 해 줍세.”
원체 내숭한 박사라 함경도 말씨를 듣고 눈치를 살펴보니, 배뱅이 오마니 뻘밖엔 될 것이 없다 하고 단판에 듸리 대는데,
(창 : 무장단 공수조)
“우리 오마님 어데 가고 함경도집 오마니만 나왔소. 함경도집 오마니는 그저 갈체 후일향만강하옵시며 가내제절이 무양합니까? 우리 오마니는 어디 가고 배뱅이 온 줄을 왜 모릅니까. 음”
(아니리)
이때 함경도집 노친이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무스게 왔데이 왔데이 하니 나가보지 않케이 하니”
끌고 나오니, 이것이 분명히 배뱅이 오마닌 줄을 알고, 슬픈 목소리로,
(창 : 무장단 공수조)
“불초녀식 배뱅이 왔구나, 오마나 오마니, 저를 찾는 지가 삼년 석달이 된 줄을 알면서도 이승과 저승에 길이 달라 못왔다가, 오늘날에야 평양 사는 박사 무당의 입을 빌어 보고 싶은 말 다하려고 왔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