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때여 춘향 모친은 초저녁 잠 실컷 자고 일어나 도련님 드릴라고 밤참 음식을 준비헐 제, 춘향 방에서 울음소리가 낭자허니,
“아이고 저것들 또 사랑싸움 허는구나. 싸움이 길면 이별 허기가 쉽느니라. 내가 가서 싸움을 말려줘야지.”
춘향 모친이 싸움 말리러 나오는디,
[중중모리]
춘향 어머니 나온다. 춘향 어머니 나와. 건넌방 춘향모 허던 일 밀쳐놓고 모냥이 없이 나온다. 춘향방 영창 밖에 가만히 선뜻 들어가 귀를 대고 들으니 정녕한 이별이로구나. 춘향어모 기가 맥혀 어간마루 선뜻 올라 두 손뼉 땅땅,
“허허 별일났네. 우리 집에 별일 나.”
쌍창문 열떠리고 주먹 쥐어 딸 겨누며,
“네 요년, 썩 죽어라.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가게. 내가 일생 이르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후회 되기가 쉽겄기어 태과헌 맘 먹지 말고 여염을 헤아려 지체도 너와 같고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의 짝을 지어 내 눈 앞에서 노는 양 내 생전으 두고 보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너무 도고하야 남과 별로 다르더니 잘 되고 잘되었다.”
딸 꾸짖어 내어 놓고 도련님 앞으로 달려들어,
“여보 여보 도련님, 무엇이 어쩌고 어찌어?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허니 무슨 일로 그러시오? 내 딸 어린 춘향이가 도련님 건즐 받은지 준 일년이 되었으되 행실이 그르던가, 얼굴이 밉던가, 언어 불순턴가? 어느 무엇 그르기에 이지경이 웬일이오? 내 딸 춘향 사랑헐 제 안고 서고 눕고 자기 일년 삼백 육십일, 백년 삼만 육천일. 떠나 사지 마자고 주야 장천 어루다 말경에 가실 제 뚝 떼어 버리시니, 양유 천만사 가는 춘풍을 잡어매며, 낙화녹엽 된들 어느 나비가 돌아와. 내 딸 옥 같은 화용신 부득장춘 절로 늙어 홍안이 백수된들, 시호시호 부재내라 다시 젊든 못 허느니. 군자 숙녀 버리는 법 칠거지악에 범찮허면 버리난 법이 없난 줄을 도련님이 잘 알제? 도련님 가신 후 내 딸 춘향 임 그릴제, 월청명 야삼경 창전으 돋은 달 왼 천하 비쳐 첩첩 수심으 어린 것이 가군 생각이 간절, 초당 전 화계상으 이리저리 거니다 불꽃같은 시름 상사 심중에 왈칵 나 손들어 눈물 씻고 북녘을 가르치며,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기루는가? 나의 정을 옮겨다가 어느 님을 고이나?’ 방으로 우루루 들어가 입은 옷도 아니 벗고 외로운 벼개 우으 벽 만지고 돌아누워 주야 끌끌 우는 게 병이 아니고 무엇이오? 늙은 에미가 곁에 앉어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어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아니 듣고 시름 상사 깊이 든 병 내내 고치들 못허고 원통히 죽거드면 칠십당년 늙은 년이 딸 죽이고 사위 잃고 지리산 갈가마귀 겟발 물어다 더진 듯이 혈혈단신 이내 몸이 누구 믿고 살으라고, 못 허지 못 허여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을 죽일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