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최악이 아닌 적은
없었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달력에서
월요일을 죄다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날이었어요.”
먹처럼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안에서 온갖 감정의 찌꺼기들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인가 보군요.
다시 한 모금, 물개 씨는
산호주를 들이킵니다.
“출근길에 구두에 캐러멜
라떼를 쏟았어요. 예감이
좋지 않았죠. 하지만
그러려니 했어요.
그 정도야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고양이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물개 씨의
말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구태여 이제 막 값을 치르려는
손님의 이야기를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 다발이 날아왔어요.
그리고 고함이 울려 퍼졌죠.
정말 벼락같은 목소리였어요.
부장님이었죠.”
더러워진 개수대의 물을 버리고
다시 깨끗한 물을 받으며 물개 씨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쏟아지는
물소리가 꼭 파도 소리 같군요.
“뭔가 실수라도 하셨습니까?”
“네. 맞아요. 실수를 했죠.
그것도 아주 멍청한 실수를.”
수도꼭지를 잠근 뒤,
식재료를 바구니에 하나하나
담습니다. 요란한 물소리가
멎자 보글거리는 수프 소리가
실내에 나직하게 퍼집니다.
물개 씨는 물잔을 내려놓으며
말합니다.
“물품 발주서에 0 하나를 잘못
적었어요. 3만 개가 3억 개로
바뀌었죠.”
“저런.“
“거래처에서 이상하게 여기고
연락을 준 덕에 손해를 겨우
막을 수 있었어요. 맞아요.
그럴 수 있다고 하기엔 좀
지나친 실수였죠. 저는 이제 막
출근한 신입이 아니니까요.”
물개 씨가 한숨을 내쉽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값을 치르기엔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저는
개수대에 있는 식재료를
바구니에 담아 맞은편 조리대로
가지고 오며 물개 씨를 향해
말합니다.
“계속 이야기하시죠.”
감자 칼로 주먹만 한 식재료의
표면을 벗겨내자 짙은 고동색의
껍질이 도마 위에 툭툭 떨어집니다.
“일주일에 야근이 최소한
네 번 이상이고, 출근할 때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눈이
나를 뜨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녹초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네.”
“바보천치라던가, 멍청한 놈
같은 말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부장님이 붕어 같은 놈이라고
할 땐……, 순간 퇴사를
할까 하는 마음이 치밀었어요.
전 물개니까요.”
“흠.”
“하지만 이직 준비 같은 걸
할 여유가 있을 리 없잖아요.
이런 지옥 같은 회사조차
구하지 못해서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물개 씨는 잔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퍽 쓸쓸한
얼굴이군요.
“목이 끊어질 정도로 사과를
한 뒤에야 쫓겨나듯
부장실을 나왔어요.
그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었죠.”
그 사이,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식재료가 양동이에 가득 쌓였습니다.
이제는 날이 선 칼로 모양에
신경 쓰지 않고 큼직하게
썰 차례입니다. 가지런히 자르지
않는 편이 멋스럽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어요.”
“어떤 게 말이죠?”
어느새 조금 더 물개다워진
얼굴에 까만 수염이 세 가닥
돋아나 있습니다. 뭔가 중요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까만
수염이 제멋대로 움찔거립니다.
다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무리 지난주의 일들을
떠올려봐도
제가 발주서를 썼던 기억이
없는 거예요.
물론 부장님의 말처럼 제가
붕어보다 못한 물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흠, 확실히 물개가 고양이보다는
지능이 떨어지는 동물이죠.
하지만 붕어와 비교한다면
퍽 자존심이 상할 겁니다.
기억을 더듬던 물개 씨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 빛났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떠올랐어요.
그 발주서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0 하나가 잘못 들어간
부분을 마무리한 건
그 녀석이라는 사실이요.”
“녀석이라면.”
“범고래죠.”
예상치 않았던 이름에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 물개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범고래라고 하셨습니까?”
물개 씨의 얼굴에 한층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네, 범고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