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멈추어라. 멈추어라. 지금은 어려운 시절. 지독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고 굶주린 사람들 산 속을 헤맨다. 힘없는 저 눈망울 보며 그 누가 고기를 삼키고 술을 마실까.
하지만 아니야. 이유가 뭘까. 내 마음 무겁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이유는. 가난에 찌든 저기 초라한 선비들 그들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네. 저 눈빛 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선비들 오래 전 이 곳 순흥의 일 살아난다.
순흥!
아, 사라진 이름이여!
반역의 땅.
불타버린 마을. 지워진 이름. 순흥.
불쌍한 왕. 버려진 왕. 누가 기억하나.
단종!
의로움 지키려 한 또 한 사람.
금성대군!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있었네. 순흥의 선비들 밤을 틈타 그를 만났지. 끓어오르는 슬픔으로 뜻이 통했네. 하지만 가시울타리 속 비밀 탄로나 비통 속에 숨져갔지.
역적의 이름으로 죽었네. 가슴에 사무쳐. 아픈 이름들.
그리워하네. 의로움 아는 자들은. 죽어간 선비들을 그리워하네.
백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네. 이 땅의 선비들 의로운 죽음.
백 년이 지나도 부끄러운 기억. 반역의 땅. 낙인 찍힌 우리 고향.
그리워하네. 의로움 아는 자들은. 죽어간 선비들을 그리워하네. 같은 슬픔. 하나의 뜻으로. 죽음의 길을 걸어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