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가을
하얗고 작던 니가 왔지
날이 갈수록 너무
빨리도 자랐어
아빠가 집에 오는 소리
꼬릴 흔들며 뛰어가
앞에서 누워 배를 드러내 인사해
놀기를 좋아한 널 혼자 외롭게 두고
늘 집을 비워야 해서 니가 안쓰러워
아버지의 말씀 따라 마당이 있는 넓은 집
좋은 새 주인 곁으로 널 보낸 후에
니가 떠나간 그 자리 가슴이 뚫린 것 같아
잊고 놓고 간 장난감 만지고만 있었어
일 년쯤 지난 뒤였어
잘 지낸단 말 들었지
골목대장 노릇 하며 건강하다고
오랜만에 니 얼굴 보러
너의 새집을 찾는 길
골목 입구부터 들린
우렁찬 니 목소리
우리 멍돌이는 정말 잘 지내는구나
아직도 내 얼굴 기억하고는 있을까
날 경계하며 짖던 너 내가 니 이름 부르자
어리둥절한 표정 짖기를 멈추고
한참을 날 바라보더니 꼬리를 흔들며 반기네
다행이다 아직 날 기억하는구나
너무 좋으신 니 새 주인
차를 내오시고 많은 얘기
넌 배를 땅에 붙이고 내 옆을 떠나지 않았지
한참을 그렇게 머물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
잘 있어 인사를 하고 널
떠나려는 데
당황한 니 표정 날 데리러 온 거 아녔어
왜 떠나 또 날 놔두고 어딜 가는 거야
그 집을 나서는 날 보며
너는 계속해 짖었지
왜 널 버리고 가냐고 또 떠나느냐고
미안해 미안해 멍돌아
내 뒤에서 그만 울렴
계속 뒤돌아 보지만 점점 멀어지는 너
잘 있어 잘 있어 멍돌아
나 다시 오지 않을게
골목길 빠져나온 순간
한없이 눈물만
끝없이 눈물만
너무 긴 시간이 흘러서
넌 이제 세상에 없겠지
하얗고 귀엽던 널 만난
84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