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도련님 하릴없이 들어가신 후 춘향은 도련님을 허망히 보내고 하도 마음이 정처없어 향단아 술상 하나 채리어라 도련님 가시는디 오리정에 나가 술이나 한 잔 드려보자
진양조 술상 채려 향단 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동림 숲을 울며불며 나가는디 초마자락 끌어다가 눈물 흔적을 씻으면서 잔디 땅 너른 곳에 술상 내려 옆에 놓고 두 다리를 쭉 펼치고 정강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쩌리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인가 내가 이리 사지를 말고 도련님 말고삐여 목을 매여서 죽고지고 이리 앉어 설리 울제
자진모리 내 행차 나오랴고 일초 이초 삼초 헐 제 나발은 홍앵홍앵홍앵 쌍교를 어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쌍교 독교 나온다 마두 병방 좌우 나졸이 쌍교를 옹위하여 구름같이 나오는디 그 뒤를 바라보니 그때여 이도령은 비룡같은 노새 등 뚜렷이 올라 앉어 제상 만난 사람 모양으로 훌쩍훌쩍 울고 나오는디 동림숲을 당도하니 춘향의 울음소리가 귀에 얼른 들리거늘 이얘 방자야 저 울음이 분명 춘향 울음이로구나 니가 잠깐 가보고 오너라
아니리 허허 도련님 귀도 밝소 가보면 무엇 헐 것이오 그만두고 어서 가십시다 이자식아 사정모르는 소리 말고 말고삐를 나를 주고 잠깐 좀 가보고 오너라 방자 충충 갔다오는디 두 눈에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며 잔디밭을 어찌 긁어 파놨던지 내 길로 한 길이나 되게 파놨습디다 누가 그랬드란 말이냐 말 안하면 모르겠소 춘향 아씨와 향단이가 나와 울음을 우는디 사람의 자식은 못 보겄습디다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듣고 말 아래 급히 내려 우루루루루 뛰어가서 춘향의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네가 천연히 집에 앉어 잘 가라고 말 허여도 내의 간장이 녹을텐디 번화 네거리 떡 벌어진 데서 네가 이 울음이 웬일이냐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시오그려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나를 아주 죽여 이 자리에 묻고 가면 영 이별이 되지마는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향단아 술상 이리 가져오너라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옛소 도련님 약주 잡소 금일송군 수진취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도련님 기가 맥혀 천하에 못 먹을 술이로다 합환주는 먹으려니와 이별허자 주는 술을 내가 먹고 살어서 무엇허리 이 술이 이별주가 아니라 후일 상봉 언약주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삼배를 자신 후어 대모색경을 내어주며 아나 춘향아 신표 받어라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은지라 천만년이 지나간들 변할 리가 있겠느냐 춘향이 지환 한 짝 벗어 옛소 도련님 지환 받으오 옥환일매는 유시소롱이라 소첩의 굳은 마음 지환 빛과 같사오니 이 토에다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소리까 깊이깊이 갊아 두고 날 본 듯이 두고 보오 서로 받어 품에 넣고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 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