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황병기, 전인삼


나면서 부터인가
노동자가 된 후부터인가
내영혼은 불안하다

새벽잠을 깨면
또다시 시작될 하루의 노동
거대한 기계의 매정한 회전
주임놈의 차가운 낯짝이
어둠처럼 덮쳐 오고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거야

잔업 끝난 늦은 귀가길
산다는 것,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깊은 불안이 또다시 나를 감싼다

화창한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 속에도
보장 없는 내일에
짙은 불안이 엄습해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죄진 적도 없고
노예살이 머슴살이 하는 것도 아닌데
풍요로운 웃음이 하늘에 닫는
안정과 번영의 대한민국 땅에서
떳떳하게 생산하며 살아가는데
왜 이리 종놈처럼 불안한 세상살이인가

믿은 거라곤 이 근육덩어리 하나
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내미
기만 원짜리 전세 한 칸 뿐인데
괴롭기만한 긴 노동
쪼개고 안 먹고 안 입어도
남는 것 하나 없이 물거품처럼
이러다간 언제 쓰러질지 몰라

상쾌한 아침을 맞아
즐겁게 땀흘려 노동하고
뉘엿한 석양녘
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

조철한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떳떳하게 노동하며
평온한 저녁을 갖고 싶은 우리의 꿈을
그 누가 짓밟는가
그 무엇이 우리를 불안케 하는가
불안 속에 살아온 지난 30년을
이제는,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평온한 미래를 위하여
결코 평온할 수 없는
노동자의 대 도를 따라
불안의 한가운데로 휘저으며
당당하게 당당하게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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