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편지
- 한용운 시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라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라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약을 달이다 말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軍艦)입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남의 군함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편지에는 군함에서 떠났다고 하였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