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위로 노을만 쟂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그 긴긴 다리 위
아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아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여인들과 노인과 말없는 사내들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창밖만 바라볼 뿐
흔들리는 대로 눈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막고
아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아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요.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국산 자동차들이 앞뒤로 꼬리를 물고
아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이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