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령: (아니리) 이 애 방자야. 나 왔다는 연통이나 하여라
도 창: (아니리) 이 때에 춘향모는 아무 물색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허고 나오는듸.
춘향모: (중중몰이) 달도 밝고 달도 밝다. 휘영 천지 밝은 달. 웬수 년의 달도 밝고, 내당연의 달도 밝다. 나도 젊어 소시적의 남원읍에서 이르기를 월매, 월매 이르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춘안 호걸이 다 늙어지니 하릴없구나
춘향모: (아니리) 게 뉘냐?
방 자: (아니리) 쉿!
춘향모: (아니리) 쉬라니 뉘냐?
방 자: (아니리) 방자요!
춘향모: (아니리) 방자, 너 이놈, 아닌 밤중에 내 집에 어찌왔느냐
방 자: (아니리) 도련님 모시고 나왔소
춘향모: (아니리) 아니, 도련님이 오시다니.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시기는 천만 의외올시다. 어서 올라가시옵시다
도 창: (아니리) 방으로 들어가 자리 주어 앉은 후에 도련님이 잠깐 방안을 살펴보는듸, 별로 사치는 없을망정 뜻있는 주련만 걸려 있겄다.
도 창: (세마치) 동벽을 바라보니 주나라 강태공이 문왕을 만날라고 위수가 낚시질허는 거동 뚜렷이 그려 있고, 서벽을 살펴보니 상산 사흐 네 노인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어떤 노인은 흑기를 들고 또 어떤 노인은 백기들고 요만 허고 앉아 있는듸 어떤 노인 청려장짚고 백우선 손에 들고 요만허고 굽어보며 훈수하다가 책망듣고 무안색으로 서 있는 거동 뚜렷이 그렸구나. 남벽을 바라보니 관우 장비 양 장수가 활공부 힘써 헐 제 나는 기러기 쏠 양으로 장궁 철전을 멕여들고 비정비팔로 흉허복실하야 주먹이 툭 터지게 좀 통을 꽉 주기 앞뒤 뀌미 바른 살이 수루루루루 떠들어가 나는 기러기 덜컥 맞어 빙빙 돌아 떨어지는 거동 뚜렷이 그렸구나. 북벽을 바라보니 소상강 밤비개고 동정호 달 오른 뒤 은은한 죽립 사이에 흰 옷 입은 두 부인이 이삽오헌을 무릎 우에 놓고 슬기덩 등덩 타는 거동 뚜렷이 그렸구나. 서안을 살펴보니 춘향이 일부종사헐 양으로 글을 지어 붙였으되 대우춘종죽이요, 분향야서라. 왕희지 필법이로구나
춘향모: (아니리) 얘 향단아 술상 하나 가져오너라.
도 창: (아니리) 술상을 들여노니 도련님이 첫 오입이 되야 말구멍이 딱막혔것다. 눈치 밝은 춘향모가 도련님 말구멍을 열어주는듸.
춘향모: (아니리)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셧난듸 무얼 대접한단 말이요? 약주나 한잔 잡수십시다.
이도령: (아니리) 오늘 저녁 내가 나온 뜻은 무슨 술을 먹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늘 일기 화창하야 광한루 구경을 나갔다가 우연히 춘향의 말을 듣고 인연되어 나왔으니 춘향과 날과 백년언약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