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소년

안치환




늦은 밤 열한시 반 종로 5가 거리엔 부슬비가 부슬비가
시간에 쫓기면서 하루의 노동을 대포 한잔에 위로받네
위로하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무거운 멜빵 짊어진 한 소년이
날 붙들고 길을 묻네 날 붙들고 길을 묻네

노동으로 지쳐버린 내 가슴엔 비내리고 비에젖고 비에젖고
난 가로수 바다를 걷다 뒤돌아 섰으나 보이질 않네
소년이 보이질 않네

눈녹아 바람부는 질척한 겨울날 종묘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그 소년의 누나
양지쪽 기대앉아 편지를 읽던 그 창녀 오! 누나

그리고 언젠가 난 또 보았어 세종로 빌딩 공사장에 한 노동자
그의 아버지였을까 그 소년의 아버지
찜통지다 허리꺽여 쓰러진 그 사람 노동자 오! 아버지

난 가로수 바다를 걷다 뒤돌아섰으나 보이질 않네
그 소년은 보이질 않네
남은 것은 없었어 세상을 휩쓰는 된 바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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